들어가며

제주에서 명함을 하나 받았습니다. 카카오톡 친구를 추가하고 프로필로 넘어갔는데, 방금 인사를 나눈 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 보는 부부의 웨딩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사람을 잘못 추가했나 싶어 몇 번을 확인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분명 그 사람이 맞았습니다. 다만 그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제가 모르는 누군가의 결혼사진이 대신 걸려 있었을 뿐입니다.

프로필 사진은 내 얼굴을 거는 자리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주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의 결혼사진을 겁니다. 그것도 여럿이, 같은 날, 같은 사진으로요.

왜일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Part.1 그들에게는 당연한 일

먼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정말로 그런 문화가 있는 건지요.

제주에서 30년 넘게 살며 감귤 농사를 짓는 이원재 씨에게 물었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그게 너무 당연한 건데, 이상하게 보니까 그게 더 신기하죠. 친한 친구가 결혼하면 단톡방 친구들이 다 같은 사진으로 바꿔요. 안 바꾸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예요.”

‘당연한 건데.’ 이 말이 오래 남았습니다. 설명이 필요 없다는 뜻이고, 설명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주 밖에서는 이게 설명이 필요한 일이 됩니다. 본인 결혼도 아닌데 왜 그 사진을 올리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같은 행동이 어디서는 당연하고 어디서는 이상하다면, 그 차이가 만들어진 자리가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Part.2 알리는 것이 곧 축하였다

제주의 결혼은 원래 두 사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전 제주의 혼례는 사흘에 걸쳐 치러졌습니다. 첫날은 돼지(‘돗’)를 잡는 날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돼지를 잡고 음식을 장만하면서 잔치가 시작됩니다. 둘째 날은 가문잔치입니다. 친척과 이웃을 대접하는 날인데, 사흘 중 가장 붐비는 날이 본식이 아니라 이 가문잔치였습니다. 셋째 날에야 예식을 올렸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하루로 줄었습니다. 그래도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제주 결혼식장에는 하객 식권이 없습니다. 입구에서 손등에 스티커를 붙여 인원만 셉니다. 누가 오든 먹이고 보낸다는 뜻입니다. 잔치는 예식 시작부터 늦은 오후까지 온종일 이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음식이 아닙니다. 알림입니다. 누구네 집에서 잔치를 한다는 소식이 마을 전체에 퍼져야 잔치가 성립했습니다. 알리지 않은 혼사는 혼사가 아니었습니다.

Part.3 친구에게도 자리가 있었다

제주 결혼식에는 육지에 없는 역할이 하나 있습니다. 부신랑과 부신부입니다.

신랑과 신부의 친구 중 한 명씩이 맡습니다. 축의금을 대신 받고, 하루 종일 옆에서 잔심부름을 도맡습니다. 예식이 끝나면 신랑, 신부, 사회자, 부신랑, 부신부 다섯이서 따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육지에는 없는 사진입니다.

이 역할의 배경에는 제주의 경제 구조가 있다고 이야기됩니다. 제주에서는 여자들이 해녀로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해왔고, 그래서 부부라도 각자의 부조 관계를 따로 관리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주의 부조는 겹으로 냅니다. 신랑 아버지, 신랑 어머니, 신랑을 모두 안다면 봉투를 세 개 만듭니다.

관계를 하나하나 세는 문화입니다. 그리고 그 목록에 친구가 정식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친구는 하객이 아니라 진행자였습니다.

Part.4 신문에서 프사로

제주학연구센터 김순자 센터장은 이 현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직까지도 제주도의 결혼 풍습은 누구네 집 결혼한다 잔치한다 이런 면은 다 알리는 문화였고, 요즘은 카톡 같은 경우에 프사에서 홍보하는 형식으로 바뀐 거라고 생각을 하고…”

바뀐 것은 매체뿐이라는 얘기입니다.

제주에는 ‘화촉 광고’라는 것이 있습니다. 혼사를 신문이나 방송에 실어 알리는 방식입니다. 지금도 이 화촉 광고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젊은 세대는 그 자리를 각자의 SNS로 옮겨왔습니다. 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은 이를 두고 “SNS를 많이 쓰는 2~30대에게 퍼진 최근의 문화고, 예전에 결혼 광고를 내던 것이 SNS 쪽으로 옮겨온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는 일은 같습니다. 마을 어귀에 붙이던 소식을, 신문에 싣던 소식을, 이제 화면에 붙입니다.

그렇게 보면 프사를 바꾼 친구들은 축하만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알림판을 대신 들고 서 있는 것입니다.

Part.5 오래된 것의 현재형

그런데 이걸 두고 “제주에는 옛것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하는 건 정확하지 않습니다. 카카오톡은 오래된 물건이 아닙니다.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행위는 아무리 봐도 지금의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습니다. 오래된 것이 사라지지 않고, 지금의 도구로 옮겨 탄 것입니다. 마을 어귀에 붙이던 소식이 신문 광고가 되었고, 신문 광고가 프로필 사진이 되었습니다. 매체는 세 번 바뀌었지만 알린다는 일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건 보존이 아닙니다. 재해석에 가깝습니다. 옛 방식을 그대로 남겨두는 게 아니라, 지금 쓸 수 있는 형태로 바꿔 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오면 질문이 제주 밖으로 넘어갑니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여기는 혼례는 어떨까요.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고, 모바일 청첩장 링크를 보내고, 계좌번호로 축의금을 부칩니다. 이것들도 전부 무언가의 현재형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뿌리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앞에서 제주 사람들이 ‘당연한 거라서’ 설명해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제주는 무엇을 이어받았는지가 아직 눈에 보인다는 것뿐입니다.

Part.6 자리를 내어주는 일

프로필 사진은 좁은 자리입니다. 한 칸뿐이고, 내 얼굴이 들어가는 게 기본값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그 한 칸을 며칠씩 비웁니다. 그리고 거기에 친구의 가장 좋은 날을 걸어둡니다. 내 얼굴을 잠시 내리고, 남의 기쁨을 대신 내겁니다.

앞서 우리는 괸당을 두고, 사랑이 고이고 고여 넘치는 사이라고 읽은 적이 있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바꾸는 일은 그 고임이 밖으로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마음이 안에만 있으면 아무도 모릅니다. 자리를 내어줘야 보입니다.

축하란, 내 자리를 잠시 내어주는 일입니다.

제주 사람들은 그걸 말로 설명하지 않고 한 칸으로 해왔습니다.

당신의 프로필 사진에는 지금 누구의 얼굴이 걸려 있는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참고 자료

  1. 본지 인터뷰 — 이원재(제주 거주 30년 이상, 감귤 농가), 2026

  2. 「왜 제주도 사람은 친구 웨딩사진을 프사로 해둘까?」, 취재대행소 왱(국민일보), 2023.6.16 — 김순자 센터장·제주대 탐라문화연구원 인터뷰, 화촉 광고

  3. 박귀단, 「제주도만의 결혼 문화, ‘부신랑 부신부’ 아시나요」, 오마이뉴스 — 부신랑·부신부의 역할, 삼일잔치, 겹부조, 손등 스티커, 해녀 경제활동 배경

  4. 본지, 「괸당: 사랑을 표현하는 제주만의 방식」(2026.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