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살아가다 보면 문득 걸음을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죠.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나? 나, 잘하고 있는 걸까?’ 남들은 다 자기만의 답을 찾아 잘 나아가는 것 같은데, 왠지 나 혼자만 헤매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말이에요.

그런데 찬찬히 들여다보면, 애초에 정해진 답 같은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대개는 지나온 굽이굽이의 흔적들을 모아, 각자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쪽에 가깝거든요.

제주 서쪽 저지오름 아래, ‘바언 제주’의 김형준 대표님에게도 꽤 길고 짙은 방황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쓰러져 있던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게 바로 ‘호지차’ 한 잔이었다는 거예요. 한동안 잊힌 채 맛이 변해버린 잎을, 버리기는 아까워 불에 한 번 더 덖어 만든 차.

식어버린 줄 알았던 잎이 불을 만나 다시 깊은 맛을 내듯, 그 역시 자신만의 삶을 새로 덖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 있는 고요한 티하우스에 앉아, 그 지난한 과정에 대해 들어봤어요.

Part.1 여행은 기타 한 대에서 시작됐다

형준님의 시작점은 차(茶)가 아니라 기타였어요.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난 바로 그날부터였죠. 학원 문턱은 밟아본 적도 없이, 유튜브 연주 영상을 틀어놓고 악보를 구해서 무작정 짚어 내려갔습니다. 이른바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대학을 졸업하긴 했지만, 졸업장을 쥐자마자 기타 한 대를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버스킹하며 버텼어요. 하지만 곧 혼자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걸 깨닫고 음악을 접게 됩니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마음이 좀처럼 잡히지 않자, 이번엔 무대 위가 아닌 무대 옆으로 자리를 옮겨요. 연예인 매니저 일을 시작한 겁니다.

몸이 고된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어요. 욕을 먹는 것도 견딜 만했죠. 진짜 문제는 ‘일한 만큼의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시스템 그 자체였습니다. 스물넷, 스물다섯. 회의감과 좌절감이 뼛속까지 스밀 수밖에 없는 나이였어요. 결국 뚜렷한 다음 목표도 없이 ‘여기서는 더 못 살겠다’는 마음 하나로 훌쩍 호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호주에서의 3~4년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어요. 대신 아주 정직하게 흘러갔죠. 시드니의 어학원, 한인 마트, 골번의 양고기 공장. 그리고 캔버라로 넘어가서는 영주권을 목표로 셰프 과정까지 밟습니다. 학비를 스스로 마련해야 했기에 서른 개가 넘는 건물 청소를 도맡았어요. 청소로 번 돈으로 학교에 가고, 주방 일까지 하며 악착같이 버틴 시간입니다. 그런데 가장 고통스러웠을 것 같은 양고기 공장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어요.

“내장 파트에서 일했는데, 악취가 너무 심해서 진짜 미칠 것 같거든요. 그런데 거기 오래 계신 분들이나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정말 선하고 다정했어요. 그때 깨달았죠. 몸이 힘든 건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만, 사람이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게 제일 견디기 어렵다는 걸요.”

누군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청소 일을 할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대요.

“호주에선 청소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가볍게 ‘땡큐’ 하고 지나가요. 그런데 한국에선 젊은 사람이 마스크 쓰고 청소하고 있으면 되게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잖아요. 저는 그 시선이 너무 낯설고 불편했어요.”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떤 존중을 받는가. 훗날 그가 자신만의 공간을 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쥔 기준들은 모두 이 시기에 다져졌습니다.

Part.2 나라고 못할까

제주에 반드시 와야 할 일이 생겨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 찻집에서 일하게 됩니다. 그곳은 그가 처음 차를 배운 곳이자, ‘호지차’를 처음 맛본 곳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 일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접어두더라도, 그곳에서 일하며 그가 굳힌 철학 하나는 명확했어요.

“저는 무조건 ‘직원 우선’주의예요. 손님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결국 그 공간을 살려내는 건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이거든요.”

찻집을 그만두고 그는 3개월을 깊은 방황 속에 보냅니다. 갓 서른을 넘긴 나이.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거쳐왔다는 이력서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것 같았어요. 다시 어딘가에 취업해야 할지, 아니면 용기를 내 내 사업을 시작해 볼지. 두 갈래 길 앞에서 그는 옴짝달싹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술김에 바다에 들어갔다가 발바닥이 심하게 찢어져 며칠을 누워만 있던 때였어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예전 동료가 챙겨준 호지차를 우려 마셨죠. 그런데 간만에 마신 그 차가 기가 막히게 맛있는 거예요. 순간, 예전에 들었던 호지차의 탄생 비화가 뇌리를 스쳤습니다.

“차 한 줌이 귀하던 시절, 애써 만든 녹차를 먹기 아까워 쟁여뒀다가 그만 까먹어버린 거예요. 나중에 꺼내보니 이미 맛과 향이 다 변해버렸죠. 버리기는 너무 아까워서 불에 한 번 슬쩍 덖어봤는데, 그렇게 탄생한 게 호지차라는 겁니다.”

아껴두다 결국 때를 놓쳐버린 잎. 그래서 차를 깊이 아는 이들 사이에서 호지차는 때로 ‘재활용된 차’라며 폄하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짙은 우울과 자기 비하에 빠져 있던 그날의 그에게,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위로로 다가왔어요.

“단순하게 보면 얜 재활용된 차잖아요. 버려진 잎도 불을 만나 이렇게 훌륭한 맛을 내는데, 나라고 못할까? 그 생각이 번쩍 들자마자 바로 움직였어요.”

여기저기 떠돌다 때를 놓친 한 사람이, 시기를 놓쳐버린 찻잎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예전에 알던 차 농장 대표님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장 농장으로 가 일하겠다고요.

Part.3 한 번 접혔던 집을 다시 열다

농장 일은 1년 정도 꼬박 이어졌습니다. 매일 새벽 세 시 반에 눈을 떠야 하는 고단한 일상이었죠. 하지만 그 1년 동안 그는 차가 자라고 덖이는 전 과정을 온몸으로 흡수했습니다.

관건은 그다음이었어요. 이걸 비즈니스로 풀어내야 하는데, 수중에 자본이 턱없이 부족했거든요. 그러다 문득 10년 전 어머니가 지어두신 건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게스트하우스를 하려다 여의치 않아 방만 덩그러니 남고, 1층은 가족들의 짐으로 꽉 찬 공간. 말하자면 이 건물 역시 한 번 ‘접힌’ 곳이었어요. 그는 바로 이곳을 게스트하우스 겸 티하우스로 되살려 보기로 합니다.

우선 2층부터 손을 대며 게스트하우스 공간을 먼저 다듬기 시작했어요.

“돈이 없으니 무리할 수가 없었죠. 2층이 원래 전부 8인실이었는데, 호주 셰어하우스 시절 좁은 방에 열 명씩 부대끼며 살던 기억이 확 떠오르는 거예요. 그 숨 막힘이 싫어서 침대를 다 빼고 전부 4인실로 바꿨어요. 애초에 떼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버렸죠.”

지금 바언 제주는 저지오름 아래 조용히 자리한, 남녀 4인실 두 개로 최대 여덟 명만 머물 수 있는 아담한 게스트하우스입니다. 숙소 소개글에 적힌 문장이 인상적이에요. ‘저희는 파티 게스트하우스가 아닙니다.’

“사실 파티 게스트하우스를 고민 안 한 건 아니에요. 근데 요즘 그런 곳은 너무 많잖아요. 이 고즈넉한 동네 분위기엔 조용하게 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무리하게 사람을 채우기보다, 소규모로 공간의 밀도를 높이는 쪽을 택한 거죠.”

홀로 여행 온 사람, 올레길을 걷다 멈춘 사람, 조용히 책을 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그렇게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이후 가족들의 짐이 잔뜩 쌓여있던 1층도 비워내기 시작했어요. 쓸만한 건 무료로 나누고 벽지도 손수 바르며, 올해 초 마침내 셀프 인테리어를 마친 티하우스의 문을 열었습니다. 도착한 손님은 주인이 내어주는 여러 제주의 차 중 하나를 골라 웰컴티로 마시고, 맑은 날엔 마당에서 조용히 불멍을 즐길 수 있게 되었죠.

그런데 티하우스까지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예상치 못한 난관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엔 병행할 생각이었어요. 게스트하우스 업무랑 밭일은 오후 늦게 해도 되니까요. 그런데 티하우스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도저히 농장 일과 병행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농장 대표님께 양해를 구하고 차를 납품받는 구조로 바꿨습니다.”

이곳의 차는 그가 몸담았던 농장에서 온 것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호지차도 당연히 포함돼 있죠. 차 한 잔에 구원받은 사람이, 이제 찾아오는 이들에게 가장 먼저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네는 셈입니다.

그는 손님을 맞이하는 틈틈이 지원사업 서류를 다듬고, OEM 공장을 알아보고, 홍보 영상을 직접 편집합니다. 새벽 네 시 반에 시작된 하루가 눈 코 뜰 새 없이 굴러가는 이유죠.

Part.4 차도 웃으면서 마실 수 있다

매일 손님들에게 차를 우리다 보니, 형준님에겐 꼭 바꾸고 싶은 문화가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찻자리의 ‘온도’예요.

“보통 티 클래스라고 하면 분위기가 엄청 엄숙하잖아요. 전 그런 게 참 싫더라고요. 왜 차를 마실 땐 늘 정갈하고 진지해야만 할까요? 차도 얼마든지 왁자지껄 웃으며 마실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티 클래스’ 대신 ‘티톡’이라고 불러요. 차를 핑계 삼아 편하게 수다나 떨자는 거죠.”

최근 인스타그램에 올린 짧은 영상 하나가 조회수 25만 7천 회를 훌쩍 넘겼어요. 전날 밤 불멍을 하며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두 손님이, 다음 날 아침 차를 들이켜며 깔깔거리는 장면이었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찻자리의 매력이 바로 그런 자연스러움이었어요.

그가 그리는 청사진은 지금의 아담한 티하우스 너머를 향해 있습니다.

“지금은 어딜 가나 커피가 대세지만, 저는 머지않아 차의 시대가 올 거라고 확신해요. 커피가 차지했던 그 자연스러운 자리에 차가 부드럽게 스며드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요.”

물론 조급해하지는 않습니다. 당장 사람들이 차에 기대하는 바가 ‘편안한 휴식’이라면, 그 지점에서부터 천천히 시작하겠다는 생각이에요. 엄숙한 다도의 틀을 단번에 깨부수려 하기보다는, 기분 좋게 웃으며 찻잔을 비우는 사람들을 한 명씩 천천히 늘려가는 쪽을 택한 거죠.

Part.5 그를 웃게 하는 것들

인터뷰 도중 그가 꽤 오래 침묵했던 질문이 하나 있었어요. “최근 가장 기뻤던 순간이 언제였나요?”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요즘은 기쁘다는 감정 자체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감정이 자꾸 메말라간다는 걸 저 스스로도 느끼거든요. 아, 그래도 두 가지는 있네요. 여자친구 만나는 거랑, 고양이요.”

서로 너무 바빠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하기 어렵지만,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한 성향이라 다행이라고 해요.

고양이는, 지원사업에 덜컥 합격했던 날 저녁 우연히 묘연을 맺었습니다. 동네 마트 앞에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가 집까지 졸졸 따라오더니, 자꾸 앞질러 가 앉아있기를 반복하더래요.

“‘네가 먼저 들어가면, 내가 책임지고 키울게’ 하고 문을 열어줬는데 진짜 쏙 들어가는 거 있죠.”

녀석의 이름은 호지차에서 딴 ‘호지’입니다.

그의 감정을 건드리는 나머지 하나는 다름 아닌 ‘손님들’입니다. 마당에 둘러앉아 별것 아닌 이야기에 크게 웃고 떠드는 사람들. 그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대요. 한 가족 손님이 아기를 안고 어르며 세상 환하게 웃던 모습. 그는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 SNS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평온하고 행복해 보였어요. 웃고 있잖아요. 사실 웃는 게 제일 중요한 거거든요. 정작 저 자신은 잘 못 웃고 살아서 탈이지만요.”

Part.6 쉬다 가세요

시간이 훌쩍 지나 사람들이 ‘바언 제주’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어떤 감정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물어봤어요. 돌아온 대답은 무심한 듯 따뜻한 네 글자였습니다.

“쉬다 가세요. 그냥, 푹 쉬다 가세요.”

인터뷰 내내 그가 가장 많이 꺼낸 단어가 ‘휴식’이었어요. 파티 게스트하우스를 포기한 것도, 방 개수를 줄여 여백을 만든 것도 결국은 사람들에게 진짜 쉴 틈을 주겠다는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사실 “쉬어도 괜찮다”는 말은 아무나 쉽게 건넬 수 있는 위로가 아니에요. 진짜 치열하게 쉬지 못해본 사람만이 그 말이 가진 묵직함을 알죠. 형준님은 그 모든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해 낸 사람입니다. 공장에서 악취를 견디고, 정당한 대가 없이 6개월을 꼬박 헌신하고, 짙은 자기 비하에 빠져 술로 밤을 지새우던 날들. 그 모든 척박한 시간을 지나온 뒤에야, 비로소 타인에게 내어줄 이 네 글자를 고른 겁니다.

“단번에 모든 걸 바꿀 순 없어요. 느리더라도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 바꿔나가야죠.”

나가며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볕이 잘 드는 한쪽 구석에 세워진 통기타 한 대가 눈에 들어왔어요. 이제는 손이 굳어서 예전처럼은 못 친다며 쑥스럽게 웃으셨지만, 그래도 차마 버리지는 못하셨더라고요.

형준님이 지나온 이력들을 쭉 나열해 보면 사실 뚜렷한 일관성을 찾긴 어려워요. 기타리스트, 매니저, 청소부, 공장 노동자, 셰프, 농부까지. 밖에서 보기엔 그저 이리저리 진흙탕을 헤매는 시간처럼 보였을 거예요. 아마 그 시간을 지나는 본인조차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막막했을 테고요.

하지만 온기가 도는 이 작은 집에 앉아 찬찬히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숱한 방황의 시간 중 단 하나도 버려진 게 없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시드니의 숨 막히던 셰어하우스는 쾌적한 4인실의 뼈대가 되었고, 타지에서 겪은 설움은 사람을 온기로 대접하는 단단한 철학이 되었으며, 끝내 쉬지 못했던 고단함은 찾아온 이에게 건네는 “쉬다 가라”는 다정한 인사가 되었습니다. 한 번 식어버린 찻잎을 다시 불에 덖으면, 전에는 없던 아주 깊은 향이 우러나는 것처럼요.

오랜 시간 묵묵히 진흙을 파헤치던 청년은, 이제 비로소 자기만의 단단한 세상을 덖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접혔던 오랜 공간, 이름을 얻은 고양이 호지, 그리고 매일 누군가에게 온기를 담아 건네는 차 한 잔으로 말이죠.

매일 앞으로 달리느라 숨이 찰 때, 가끔은 이렇게 내가 지나온 길을 한 번쯤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쓸모없다 여겨 구석에 밀어뒀던 시간들이, 실은 지금의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들어준 아주 훌륭한 재료였다는 걸 깨닫게 될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