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제주대학교의 한 동아리방을 상상해 볼까요. 책상 위에는 다 마신 삼다수 페트병이 수북하게 쌓여 있습니다. 누군가 그걸 가위로 잘게 자르고, 250도의 뜨거운 열로 녹인 뒤 선풍기 모터에 걸어 돌립니다. 윙윙 돌아가는 기계음에 맞춰 플라스틱은 가느다란 실이 되어 감기고, 그 실을 손으로 쭉쭉 찢으면 어느새 포근한 솜으로 변하죠.

“그렇게 가공해서 원단도 한번 만들어보고, 여러 시도를 해보면서 ‘아, 이게 될 수도 있는 산업군이구나’ 생각했어요.”

동아리방 한 칸을 빌려 시작했던 작고 무모한 실험. 선풍기 모터에 감겨 있던 그 엉성한 실 한 가닥은, 지금의 ‘도담스튜디오’와 지속 가능한 의류 브랜드 ‘백록’을 엮어낸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도담스튜디오는 제주에서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수거해 소재로 가공하고, 제품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르신, 자립 준비 청년, 경력 단절 여성들과 일자리를 나누고 환경 교육과 콘텐츠 제작으로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죠. 그리고 올해, 무려 4년이라는 긴 시간을 공들여 준비한 자체 브랜드 ‘백록’을 선보였습니다.

이 회사를 이끄는 김무종 대표님은 돈도, 기술도 없이 창업을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대신 그에게는 아주 확실한 무기 하나가 있었어요.

“내가 돈이 있어서 창업을 한 것도 아니고, 기술이 좋아서 한 것도 아니고, 머리가 좋아서 한 것도 아닌데, 누구보다 기동력 있게 살 자신이 있었거든요.”

오직 기동력 하나로 6년을 쉼 없이 달려온 사람은 대체 어떤 궤적을 그려왔을까요. 그리고 그 기동력의 끝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도담스튜디오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PART 1. 가방끈은 짧아도, 삶의 설계는 길게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용역을 나가 일했던 소년. 또래보다 훨씬 일찍 땀 흘리는 일의 세계를 배웠던 그는, 스무 살 무렵 무언가를 짓는 게 좋아 건축디자인과에 입학했습니다.

“스무 살 때가 유일하게 두 달 정도 알바를 안 해봤던 때거든요. 나만의 대학 생활의 로망과 낭만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3~4월 대학 생활을 해보니 제 예상과는 달랐어요. ‘내가 생각했던 대학이 이런 거라면 난 미련 없어’ 하고 다음 날 자퇴했습니다.”

두 달 만의 자퇴. 그는 이 결정을 지금도 “잘한 선택 중에 하나”로 기억합니다. 낭만 대신 현실을 택한 그는 곧바로 입대했고, 상병 계급장을 달 무렵 자신의 삶을 백지 위에 새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나는 가방끈도 짧고. 대신 다르게 생각해 보면, 남들보다 이르게 경험해 봤던 것들에 대한 레버리지가 있으니까. 그러면 나는 나만의 일을 해보겠다, 주체적인 나의 일을 하겠다. 그래서 군대에서 창업을 생각했어요.”

그는 군대에서 5년, 7년, 10년의 청사진을 치밀하게 짜고 나왔습니다. 서른 살까지 남은 5년. 그 시간 동안은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게 유일한 목표였죠. 돌아갈 퇴로 따위는 아예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PART 2.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꾼 마이크

전역 후 그가 다시 대학의 문을 두드린 건 학문이 아닌 ‘울타리’가 필요해서였습니다. 끈끈한 관계망과 특유의 문화가 지배하는 제주의 특성상, 맨땅에 부딪히기보다 대학이라는 발판이 필요했던 것이죠.

2019년, 제주대학교에 입학한 그가 가장 먼저 공략한 것은 창업 공모전이었습니다. 주제도, 발표 시간도 모두 정해진 링 위. 결국 승부는 마이크를 쥐고 심사위원을 설득하는 데서 판가름 난다고 굳게 믿었어요.

“첫 번째 공모전에서 딱 1등을 했을 땐 초심자의 행운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도 1등을 했고, 세 번째로 나간 전국대회에서도 감사하게 1등을 했어요. 그때 저한테는 그 물음표가 느낌표처럼 다가왔어요. 믿음이 생겼죠.”

창업을 위해 꼭 필요했던 엔지니어 친구를 팀으로 데려올 때도 이 확신은 빛을 발했습니다. 당장 줄 월급 대신 그는 약속했습니다. 네 포트폴리오는 내가 채워줄 테니, 너는 공대에서 1등으로 졸업하라고. 그는 12개 공모전의 1등 이력을 친구에게 쥐여줬고, 친구는 1등 졸업으로 답했습니다.

충분한 테스트를 거친 3학년 말, 공모전을 스스로 멈춘 그는 마지막 상금 100만 원으로 곧장 법인을 세웠습니다. 제주의 선순환을 온전히 담아보겠다는 뜻의 ‘도담’, 그리고 끈질기게 고민하고 사유하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스튜디오’. 그렇게 ‘도담스튜디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PART 3. 쓰레기가 돈이 된다는 걸 납득시키는 일

처음부터 폐플라스틱만을 고집했던 건 아니에요. 커피박, 감귤박, 폐지 등 제주의 온갖 폐자원을 샅샅이 들여다봤죠. 하지만 결국 비즈니스는 “쓰레기는 돈이 된다”는 논리를 스스로 증명해 내야만 했습니다. 가장 사업성이 확실하고 가공의 볼륨이 큰 것이 바로 폐플라스틱이었어요.

초기에는 기관과 기업에 납품하는 B2G, B2B 사업으로 기틀을 다졌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예산 감축의 시기를 정통으로 겪으며 뼈아픈 한계를 마주하게 되었죠. 기관의 기념품 예산이 깎이자, 참신함만으로는 두 번 세 번의 연속 구매를 끌어내기 벅찼습니다. 긴 호흡으로 살아남으려면 결국 그들만의 팬덤을 가진 ‘자체 브랜드’가 절실했어요.

그렇게 소비자 브랜드 ‘백록’을 기획하고 세상에 내놓기까지 꼬박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백록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선 제주 캐주얼 아웃도어 브랜드예요.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자연을 만나는 제주 사람들의 순간에서 영감을 얻어, 아우터와 상의, 팬츠, 모자, 가방을 만들고 있죠. 그 4년 동안 대표님이 팀원들과 놓지 않은 기준이 하나 있습니다.

“가치 소비가 1번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소비자분들은 예쁘다, 가격 대비 좋다, 기능적이다, 이런 기준으로 선택해서 구매하시고, 근데 이게 업사이클링이기까지 해. 저희는 그런 부수적인 가점이라고 생각해요. 맹목적으로 가치 소비가 앞단에 들어가게 되면 되게 많은 것들이 변질되기 시작하거든요.”

수거하고 가공하는 복잡한 공정 비용을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것. 일반 제품과 나란히 진열되어도 제품의 매력으로 선택받겠다는 기준이었습니다.

PART 4. 끝단의 끝단까지

도담스튜디오의 공식적인 하루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6시에 끝납니다. 하지만 김무종 대표님의 하루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요. 오후 6시까지 빗발치는 현장 영업과 행정 업무로 기진맥진해진 뒤, 저녁을 먹고 나서야 내일과 다음 달의 설계를 짭니다. 퇴근은 늘 새벽 2~3시. 주말도, 휴일도 없이 달린 지 벌써 6년째입니다.

생각이 막다른 벽에 닿아 우울해질 때면, 그는 스마트폰을 끄고 수첩과 볼펜만 쥔 채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고민이 필요하면 끝단의 끝단까지 깊게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결론을 못 낸 채 잠든 날,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 해법이 떠오를 때가 있다고 해요. 그럴 때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고요. ‘내가 고민을 덜 했다.’

너무 힘들어서 밤잠을 설친 적은 없었냐는 물음에, 그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홀로 애 셋을 억척스럽게 키워내신 어머니의 삶을 떠올리면, 자신이 짊어진 무게는 결코 투정 부릴 일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PART 5. 새벽까지 펜을 쥐게 만드는 원동력

대표님에게 매일 새벽까지 펜을 쥐게 만드는 원동력을 묻자,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팀원들’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른 데서 취업을 경험하기 전에,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 회사를 선택해서 자기 20대를 갈아 넣어준 친구들이에요. 우리가 기획한 것들을 업으로서 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저한테는 원동력이에요.”

도담스튜디오가 아니었다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는 당장 밥집을 하든 주류 유통을 하든 잘해낼 자신이 있다고 했어요. 무슨 일이든 결국 자기 일을 하고 있었을 거라는 뜻이죠. 그렇다면 누군가의 곁에서 일을 배우는 길은 왜 택하지 않았을까요. 이유는 아주 뚜렷했습니다.

“저는 아직 이 사람을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겠다는 어른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창업을 하고, 내가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할지언정 나는 그런 사람을 지향하겠다. 그런 창업을 하는 거예요.”

PART 6. 제주 땅에 지어 올릴 그들만의 파타고니아

앞으로의 10년을 묻자, 거침없는 청사진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폐자원을 온전히 처리할 자체 공장, 제주의 색을 고스란히 담은 플래그십 스토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서울 진출까지.

“파타고니아는 순환 체계를 건드려서 수익을 다시 순환하는 구조를 그리는 회사, 프라이탁은 버려지는 소재로 나만의 것을 만드는 아이덴티티를 심어주는 회사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희의 큰 우주는, 저희만의 파타고니아인 겁니다.”

제주에서 폐플라스틱을 수거하고 가공해 일자리를 낳고, 그 수익을 다시 지역으로 순환시키는 궤적. 이 궤적이 제주에 뿌리내리면 전국 어느 지자체에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모델이 될 거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10년 뒤에는 제가 아니더라도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팀원들로 설계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자기네들이 하고 싶은 거 하고, 그걸 구현할 수 있는 사람들. 대신에 저희 팀원들은 무조건 겸손해야 됩니다.”

나오며

동아리방의 삼다수 페트병을 다시 가만히 떠올려 볼게요. 가위로 자르고, 250도의 뜨거운 열을 가하고, 쉼 없이 모터에 걸어 돌려야 비로소 실 한 가닥이 완성되었죠. 적당히 녹이다 만 플라스틱은 결코 단단한 실이 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는 생각도, 계획도, 6년의 팍팍한 하루하루도 기어코 그 끝단까지 밀어붙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되, 무엇 하나 녹이다 말지 않는 사람이요.

저 역시 제 몫의 실 한 가닥을 뽑아내기 위해, 주저하던 생각들을 조금 더 끝단까지 밀어붙여 봐야겠습니다.

도담스튜디오와 백록이 제주 땅에 지어 올릴 그들만의 파타고니아를, 그리고 여러분의 삶에서 피어날 첫 실 한 가닥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