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이주한 사람들 사이에서 ‘괸당’은 그리 좋은 말이 아니다.
“괸당 때문에 못 버틴다”, “괸당 안에 못 들어가면 여긴 남의 동네다”
같은 말이 온라인 이주민 커뮤니티엔 심심찮게 올라온다. 텃세, 배타성, 넘을 수 없는 벽. 육지에서 온 사람들에게 괸당은 대개 그런 얼굴로 먼저 다가온다.
그런데 이 단어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뜻밖의 말이 나온다. 사랑이다.

Part.1 괸당이라는 말
괸당은 친척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다만 육지에서 친척이 대개 혈연을 가리키는 것과 달리, 제주의 괸당은 혈연을 넘어 지연과 학연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우리가 괸당”이라는 말 한마디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서로를 챙기고 밀어주는 사이가 된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에게 괸당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세상을 나누는 하나의 기준선에 가깝다. 내 편인가 아닌가, 우리 안인가 밖인가.
Part.2 두 갈래의 어원
이 말이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한자 ‘권당(眷堂)‘에서 왔다는 설이다. 돌볼 권(眷)에 집 당(堂), 곧 한집안 식구를 뜻하는 말이 세월을 거치며 ‘괸당’으로 굳어졌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순우리말 옛말 ‘괴다’에서 왔다는 설이다. ‘괴다’는 본래 ‘사랑하다’라는 뜻의 오래된 말이다. 옛 시가에 나오는 “임이 나를 괴시니”의 그 ‘괴다’다. 흥미로운 건 이 단어에 또 다른 뜻이 있다는 점이다. 물이 한곳에 모여 고이는 것, 그것도 ‘괴다’라고 한다.
Part.3 고여서, 넘치는
두 번째 설을 따라가면 괸당은 이렇게 읽힌다. 사랑이 한곳에 고이고 고여, 마침내 곁으로 흘러넘치는 사이. 한두 번의 호의로 되는 관계가 아니라, 오랜 시간 조금씩 쌓이고 고여야 비로소 만들어지는 사이라는 뜻이다.
‘괴다=사랑하다’라는 어원이 학술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주라는 땅을 생각하면, 이 해석은 묘하게 설득력을 갖는다.
Part.4 왜 제주에서 이 말이 넓어졌나
섬은 혼자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었다. 거센 바람과 척박한 땅, 예고 없이 닥치는 바다의 변덕 앞에서 제주 사람들은 이웃에 기대는 법을 먼저 배웠다. 밭일도 지붕을 이는 일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서로의 손이 곧 생존의 조건이었다. 피가 섞였든 아니든, 곁에서 오래 함께 견딘 사람이 곧 식구였다. 괸당이 혈연을 넘어 넓어진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문제는 이 단단한 안쪽이, 밖에서 보면 높은 벽이 된다는 점이다.
2017년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펴낸 『제주특별자치도 정착주민의 지역공동체 조성을 위한 실태조사 및 기본계획』은 정착주민과 선주민 사이 갈등의 주요 원인으로 ‘문화 차이, 괸당 문화, 제주어’를 꼽았다. 마을 단위의 의사결정에서 이주민이 배제된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오래 산 주민이 새로 온 사람을 두고 “굴러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표현하는 정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이주민들이 느끼는 벽은 그저 기분 탓이 아니라, 조사로도 확인되는 실체인 셈이다.
Part.5 벽인가, 울타리인가
그러나 같은 조사와 여러 관찰들이 공통으로 짚는 지점이 하나 있다. 제주 사람들의 배타성은 ‘차가움’이라기보다 ‘관계가 아직 맺어지지 않은 상태’에 가깝다는 것이다. 문을 걸어 잠근 게 아니라, 문을 여는 데 시간이 걸리는 쪽이다.
한 번 괸당으로 받아들여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사뭇 다르다. 김장을 하면 한 통을 나누고, 감귤 철이면 상자째 문 앞에 놓아두고, 급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오는 사람들이 된다. 들어가기 전엔 그토록 높던 벽이, 들어가고 나면 바람을 막아주는 돌담이 된다.
결국 괸당의 양면성은 같은 돌담을 어느 쪽에서 보느냐의 문제다. 밖에 선 사람에겐 넘기 힘든 벽이고, 안에 든 사람에겐 나를 감싸는 울타리다. 그리고 벽에서 울타리로 넘어가는 데 필요한 건, 대단한 자격이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이다.
Part.6 되기까지가 어려울 뿐
제주의 사랑은 빠르지 않다. 대신 한 번 고이면 오래간다. 괸당은 어쩌면, 사랑을 표현하는 제주만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급히 안기는 대신 천천히 고여서, 넘칠 때까지 기다리는 사랑.
그러니 괸당은 나쁜 말이 아니다. 다만 되기까지가 어려운 말일 뿐이다.
당신에게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괸 사이가 있는지 물어본다.
참고 자료
허상문, 「괸당문화」, 제주일보
「제주어의 어원을 찾아서」, 제민일보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제주특별자치도 정착주민의 지역공동체 조성을 위한 실태조사 및 기본계획』(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