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찰나

며칠 전부터 괜히 두근거리던 마음. 오랜만에 맡는 공항 냄새. 이름도 모르는 거리의 복작함. 숲에 들어섰을 때의 서늘한 공기와, 뜨거운 태양 아래 부서지던 파도. 그 하루하루의 끝에는 늘 돌아가 눕던 방이 하나 있었을 거예요.

숙소를 고르는 기준은 저마다 다릅니다. 창밖 풍경이 전부인 사람도 있고, 침구 하나로 결정하는 사람도 있고, 조식이 나오는지부터 보는 사람도 있죠. 그 나름의 좋음이 다 다르고요.

그런데 그 모든 걸 이기는 게 하나 있더라고요. 주인장의 정성입니다. 숙소도 결국 사람이 고르고, 사람이 꾸미고, 사람이 맞아주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몇 년이 지나 누가 “나 거기 가려는데” 하고 물어오면, 먼저 튀어나오는 말이 이런 거죠.

“거기 그 숙소 있잖아. 주인분이 진짜 좋았어.”

제주 서쪽의 한 마을에, 8년째 같은 자리에서 문을 여는 숙소가 있습니다. 에어비앤비에 쌓인 후기는 1,139개, 평점은 5점 만점에 4.98점. 객실 하나는 국내 상위 5%, 다른 하나는 상위 10%에 이름을 올렸고요. 이 숫자를 만든 사람은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0시에 퇴근하는 하루를, 1년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숙소 ‘묵다’와, 그 옆에 나란히 문을 연 카페 ‘하와’. 두 곳을 운영하는 김민영 대표님입니다.

두 시간 남짓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제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말은 이거였어요.

“할까 말까가 아니라,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방법은 찾아지는 거예요.”

이 문장이 나오기까지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사기를 당해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고, 2년을 꼬박 일궈놓은 숙소를 통째로 빼앗겼고, 믿었던 사람은 메뉴를 그대로 들고 나가 근처에 가게를 차렸고요. 그러고도 매번 다시 삽을 드셨습니다.

김 대표님의 이야기, 이제 시작해볼게요.

Part.1 무너진 자리에서

결혼 후 오랫동안 살림을 해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분의 사업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옷을 만들어온 분이었어요.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게 막 생겨나던 시절부터 그 일을 하고 계셨고, 한때는 전국이 다 아는 브랜드의 롱패딩을 만들어 납품하던 회사였습니다. 소중히 쌓아 올린 것이었죠. 그게 중국에서 당한 사기 한 번으로 문을 닫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던 무렵이었어요. 아는 사람이 강원도에 있는 상가 건물 2층을 빌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때만 해도 양양은 지금처럼 유명한 동네가 아니었어요.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채로 일단 가보셨다고 합니다.

“가서 보니까 상가 2층이었어요. 여기서 뭘 하지, 하는데 할 만한 게 숙소인 거예요. 왜냐면 나는 그동안 살림을 하느라 청소하고 빨래하고 예쁜 거 사다 놓고, 그런 걸 계속 해왔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려다 보니 숙소가 된 거죠.”

‘묵다’라는 이름이 처음 붙은 자리가 바로 여기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 묵다요.

그런데 이 일이, 너무 잘 맞았습니다.

그냥 할 만하다는 정도가 아니었어요.

“맨날 집에서 청소하고 빨래해도 티도 안 나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는데, 이게 돈이 되니까 너무 신나는 거예요.”

이 말이 오래 남았어요. 살림은 아무리 해도 표가 안 나잖아요. 어제 치운 자리를 오늘 또 치우고, 개어둔 빨래는 저녁이면 다시 쌓이고. 그런데 같은 손으로 똑같은 일을 하는데, 이번엔 누군가 고마워하고 값까지 치릅니다. 누구도 값을 매겨주지 않던 일이 처음으로 값을 갖게 된 순간이었던 거죠.

신이 나서 하니 손님들과도 잘 지내게 됐고요. 여행 중인 사람들은 이미 마음이 넉넉하잖아요. 그 기운에 오히려 본인이 위로를 받았다고 하셨어요.

그렇다고 형편이 넉넉했던 건 아니에요. 방이 네 개였는데 정작 가족이 쓸 방은 없었습니다. 조그마한 창고에 2층 침대를 놓고 세 식구가 지냈어요. 화장실도 없어서 손님이 체크아웃한 뒤에야 청소를 하면서 같이 씻었고요. 손님이 떠나야 비로소 씻을 수 있는 집이었던 거죠. 여름에 연박 손님이 이어지면 그마저도 어려우니까, 바닷가에 텐트를 쳐두고 거기서 밥을 해 드셨다고 합니다.

“그때 생각해보면 힘들었는데, 진짜 재미있었거든요.”

Part.2 행주 하나만 남기고

그렇게 2년을 꼬박 일했습니다. 숙소는 자리를 잡았고,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셨어요. 2년 만의 휴가였죠.

그런데 여행지에서 SNS를 켰다가 글 하나를 보게 됩니다. 건물주가 올린 글이었어요. 이번에 자기가 숙소를 오픈하게 됐으니 많이 이용해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진 속 그 숙소는, 지난 2년간 대표님이 만들어온 바로 그곳이었고요.

재계약 이야기는커녕 통보조차 없었습니다. 전화를 걸어 물었어요. 지금 올리신 그 숙소가 우리가 하고 있는 그 숙소가 맞느냐고. 맞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하자, 내 건물인데 뭐가 문제냐는 말이 돌아왔고요.

“그러실 수도 있는데, 도의적으로 우리한테 먼저 말을 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였냐.”

화를 내는 대신 도리를 묻는 쪽이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없었어요.

그런데 이때 잃은 건 숙소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숙소가 잘되기 시작하면서 부부는 땅을 하나 사뒀어요. 강원도로 내려올 때 서울 집을 전세로 돌렸는데, 그 전세금을 다 털고 빚까지 보태 산 400평짜리 밭이었습니다. 부동산 중개인이 밭 한가운데를 한참 걸어가더니 “여기까지가 이 땅입니다” 하던, 경계조차 흐릿한 땅이었고요. 돈을 벌면서 틈틈이 땅을 다지고 작은 건물도 하나 올려뒀습니다.

그 건물은 남편분 친구 가족에게 그냥 내어주고 있었어요. 양양에 와서 장사를 해보고 싶다길래 선뜻 빌려준 것이었죠. 빌려준 게 건물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가족이 낸 식당의 이름은 ‘묵다 식당’이었어요. 숙소 이름을 그대로 쓰게 해준 겁니다. 메뉴도 마찬가지였고요. 뭘 팔면 좋을지 함께 고민하다가, 미국에 살던 대표님 친구가 보일링 크랩이라는 걸 알려줬습니다. 그걸 메뉴로 만들어 올린 것도 대표님이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름도, 메뉴도, 공간도 선뜻 내어준 대표님에게 말 한마디 없이, 그 가족은 짐을 뺐어요. 가게를 열 때 선물로 준 행주 하나만 남기고, 대표님 소유의 살림살이를 전부 가지고 사라졌습니다. 얼마 뒤 그 가족은 근처 어딘가에 가게를 엽니다. 주 메뉴는 보일링 크랩이었고, 가게 이름은 건물주가 지어줬습니다.

대표님이 한국을 비운 사이, 건물주와 그 가족이 서로 알게 되어 가까워져 있었던 거예요.

회사가 무너져 강원도까지 내려온 지 2년 만이었습니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구나. 그렇게 두 번째 위기를 맞은 거죠.”

Part.3 “배 아파 죽어봐라”

그래도 갈 곳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 400평 밭이요.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그 건물도 비어 있었으니까요. 집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잘 곳은 있었던 셈입니다.

그 땅 위에서 대표님은 마음을 먹습니다.

“진짜 이 악물고, 너희 다 배 아파 죽어봐라 하면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꺼낸 카드가 좀 뜻밖이었어요. 수영장이 딸린 식당이었거든요. 발리에서 자재를 들여와 카바나를 짓고 파라솔을 세우는, 당시 국내에는 개념조차 낯설던 비치 클럽 형태였습니다.

이런 발상이 어디서 나왔을까 궁금했는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알겠더라고요. 원래 이런 걸 좋아하는 분이셨어요.

“크리스마스다 그러면 친구들이랑 뭐 하고 놀지, 오늘은 어떤 콘셉트로 놀지 그런 걸 생각했어요. 보드게임도 그냥 하는 게 아니라 벽에 봉투를 붙여놓고 게임을 다 적어서 뽑게 하고.”

생일 파티는 늘 크게 열었고, 아이를 키우면서는 할로윈이면 소품을 제대로 갖춰놓고 놀았다고 합니다. 전부 자기 돈 들여 자기가 좋아서 하던 일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게 돈이 되는 겁니다.

“그동안은 내 돈으로 열어서 친구들이랑 좋은 시간을 보낸 거였는데, 폭삭 망하고 나니까 그런 것들이 어쨌든 돈이 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재미있겠어요.”

2월에 시작해 7월 1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수영장을 파고, 전봇대를 새로 세우고, 다섯 달을 거의 잠도 안 자며 매달렸다고 해요. 그렇게 ‘두둥실’이 생겼습니다.

물론 반대가 많았어요. 바다가 겨우 300미터 앞인데 누가 굳이 골목 안으로 들어와 수영장을 찾겠느냐는 겁니다. 그것도 3시간에 30만 원을 받겠다는데, 바로 앞 해변은 공짜였으니까요.

“근데 나는 이게 될 것 같은 거예요. 왜? 나 같은 사람이 있을 거니까.”

결과는 대표님 표현대로 ‘센세이션’이었습니다. 시간당 30만 원에 하루 다섯 타임. 한 타임마다 500만 원이 들어왔고, 성수기 한 달 매출은 4억 원에 달했어요. 전국에서 카페와 숙소를 하는 대표들이 소문을 듣고 구경을 왔습니다. 자기가 누구라고 밝히진 않아도 보면 안다고 하시더라고요. 놀러 온 건지 보러 온 건지는 표가 나니까요. 이듬해부터 수영장을 낀 대형 카페들이 전국에 생겨났습니다.

다만 그 시절을 성공담으로만 기억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때는 사업이라는 걸 모르고, 그냥 내가 할 줄 아는 걸 한 거잖아요. 문의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우리는 너무 바빠서 이것만 했어요. 그때 내가 사업을 좀 알았더라면 자재 납품부터 컨설팅까지 패키지로 만들어서, 진짜 빌딩 하나는 세웠을 것 같거든요.”

두둥실에 대한 회상을 마무리하며, 대표님께서 넌지시 얘기하셨어요.

“사람이 진짜 죽어라 한 가지 목표만 가지고 하면, 안 되는 게 없구나. 그때 뼈저리게 느꼈어요.”

Part.4 다시, 숙소

제주로 무대를 옮긴 계기는 사업이 아니라 아이였습니다.

네 살에 양양으로 간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1학년이 전교에 세 명이었어요. 2학년이 되자 통합반으로 묶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울은 이미 살아봤으니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마침 그때는 제주와 양양을 잇는 비행기가 있었고요. 여름엔 양양에서 장사하고 나머지 계절은 제주에서 지내면 되겠다, 그 정도의 계획이었습니다. 처음 이 자리를 고른 이유도 한적해서였어요. 어차피 여름엔 여기 없을 테니까요.

두둥실도 있었고, 다른 걸 해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고른 건 숙소였습니다.

“그때가 진짜 힘들었지만 좋았다고 했잖아요.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그게 다시 하고 싶더라고요.”

이번엔 처음부터 숙소와 카페를 함께 준비했습니다. 숙소 ‘묵다’와 카페 ‘하와’. 하와는 애초에 묵다에 묵는 분들을 위한 리셉션이자 서비스 공간이었어요. 조식을 내고, 저녁에 칵테일을 내주는 자리요.

그런데 굳이 이름을 나눈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숙소에 오는 분들이 곁다리로 받는 음료나 조식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돈을 받고 파는 메뉴를 혜택으로 느꼈으면 했거든요. 그래서 아무거나 쓰지 않고 카페를 제대로 운영한 거죠.”

서비스로 대충 내주는 음료가 아니라, 남들이 돈 주고 사 먹는 걸 그냥 드리고 싶었던 겁니다.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생겼어요. 하와가 예뻐서 와보고 싶었는데, 숙소를 잡고 보니 옆이 하와였던 손님들이 생긴 거죠. 심지어 그 음료도 무료, 저녁 칵테일도 무료, 아침까지 나오고요.

손님 방 네 개에 맞춰 열 개의 좌석으로 시작한 하와는, 지금 혼자서도 크게 자라고 있습니다.

“하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우리가 서비스하는 곳이 조금 더 매력 있는 곳이면 숙소에 오시는 분들한테 더 많은 어필이 되니까요.”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걸까. 답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이어진 설명이 이분의 작동 원리에 가깝다고 느꼈어요.

“손님한테는 이미 계산을 한 사이잖아요. 돈 받은 만큼만 잘하면 돼요. 근데 내 마음 가는 대로 더 해줘도 아무 손해가 아니고 아무 문제가 안 생기는 거예요. 그럼 나는 또 신이 나니까 더 하게 되고.”

사람 사이에서는 아무리 이유 없이 잘해줘도 오해를 사거나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기잖아요. 준 만큼 돌아오지 않는 것도 당연하고요. 그런데 손님과는 이미 계산이 끝난 사이라, 더 주는 게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내가 뭔가를 해줬는데 너무 좋다고 피드백이 바로바로 오니까, 제가 너무 채워져요. 정서적으로 채워져요.”

주는 쪽이 오히려 채워지는 구조. 대표님이 계속 무언가를 벌일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Part.5 너, 내 동료가 되어라

재미있는 건, 대표님이 벌인 일들의 시작점을 되짚어보면 거기엔 늘 사람이 한 명씩 서 있다는 겁니다.

추리 프로그램 ‘루아’가 그랬어요.

혼자 5박을 예약한 남자 손님이 있었습니다. 오기 전부터 질문이 많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예약 페이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온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다리를 다쳐 절뚝이고 있었습니다. 저녁으로 고기가 먹고 싶다길래 근처 고깃집을 알려드렸는데, 혼자 고기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도전해보겠다며 나갔다가 금방 돌아왔고요. 결국 못 드시고 온 겁니다.

대표님은 그냥 두지 못했어요. 마침 그 고깃집에 매니저 일행이 있었거든요. 전화를 걸어 합석을 부탁했고, 그날 밤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놀았다고 합니다. 다친 다리로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는 취미로 프로파일링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의뢰가 들어오면 알아봐 주기도 하고, 가끔 강의도 나간다고 했어요. 연습용으로 써둔 이야기가 있다길래 재미 삼아 해봤는데, 마피아 게임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이유를 찾고, 증거를 찾고, 인과관계를 설명해내야 범인에 닿는 방식이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야 우리 이거 하자 그랬죠. 묵다에 손님이 다 차면 여덟 명이니까, 이 여덟 명이 모여서 하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는 반신반의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 하실 거면 이야기 네 편에 대한 값을 달라고 했거든요. 대표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보내셨어요.

그렇게 시작된 루아는 지인들을 불러 작은 테이블에서 데모를 돌리는 것부터 시작해 3년을 더디게 자랐습니다. 지금은 열여섯 편 남짓의 이야기를 갖고 있어요. 제주의 리조트와 복합문화공간, 대형 동물병원과도 손을 잡고 있고요.

곁을 지키는 매니저도 원래는 손님이었습니다.

오픈 초기에 칵테일을 마시러 온 분이었어요. 서울 근교에서 4년간 식품 개발 일을 하다 그만두고 제주에 놀러 온 참이었죠. 대표님이 물었습니다. 놀려면 돈이 필요하지 않겠냐고, 알바를 해보지 않겠냐고. 그러면서 자기소개를 보내달라고 하셨어요.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한 그, 이 순간은 자기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해요. 그렇게 긴 글을 써 대표님께 보냈다고 합니다.

사진을 배우던 사람이었기에, 대표님은 커플과 신혼부부가 많은 숙소에서 스냅 촬영을 상품으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셨습니다. 잠깐 있으려던 사람이 그렇게 몇 해를 함께하고 있어요.

지금 하와의 메뉴는 이분 손에서 나옵니다. 소스 하나까지 직접 개발하시고요. 4년간 식품 개발을 하던 경력이 카페 주방에서 그대로 쓰이고 있는 셈이죠. 포스터 디자인이며 루아의 영상 같은 비주얼 작업까지 도맡고 계시고요.

최근 사우나 행사를 함께 연 인플루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사우나와 아무 상관 없던 친구가 겨울에 채널을 열더니 반년도 되지 않아 팔로워 3만 명을 모았어요. 마침 몇 해 전부터 사우나를 마음에 두고 타이밍을 보던 대표님과 시점이 맞아떨어졌습니다.

“내가 혼자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얘가 할 수 있잖아요. 홍보나 모객 같은 걸 다 맡아주니까 나는 행사를 하는 게 덜 부담스럽고.”

이렇게 사람에서 사람으로,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이분들은 농담처럼 이렇게 부릅니다.

“우리는 이걸 유니버스라고 해요. 민영이 유니버스.”

Part.6 나를 믿는 사람들

사람이 늘어나면서, 대표님에게는 전에 없던 감각이 하나 생겼습니다.

“내 돈으로 할 때는 이게 없어져도 됐어요. 문을 닫고 여는 게 내 마음이니까.”

그동안 지어온 것들은 전부 혼자 감당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사기를 당해도, 뒤통수를 맞아도, 자기 몫으로 삼키고 다시 삽을 들면 그만이었죠. 그런데 자기를 믿고 시간을 쓰는 사람이 생기니 셈법이 달라집니다.

“나를 믿고 자기 시간을 쓰는 사람이 생기니까, 이 사람이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었을 때 ‘너 여기 다녀?’ 소리를 듣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태어나 처음으로 지원사업 서류를 씁니다.

그전까지 브랜딩은 배울 필요조차 없는 것이었어요. 내가 좋아서 벌이고 내 손으로 꾸리면 그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사업계획서를 쓰려니 BI가 무엇인지, 우리 브랜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무엇인지를 처음으로 적어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가장 기뻤던 순간을 여쭤봤더니, 꺼내신 것도 그 지원사업에 선정됐다는 문자를 받은 날이었어요.

“책임감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내가 그동안 몰랐던 게 너무 많은 거죠. 끝나고 나니 돈을 떠나서 남는 게 너무 많았어요.”

남은 것 중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선정된 동기 대표들에게 보고 배운 게 많았고, 다들 힘들다면서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그 자체가 힘이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좋은 사람 하나를 만나게 되면 나머지가 다 퉁 쳐지는 거예요. 그 사람을 통해서 또 다른 대표님들을 만나게 되고, 또 퉁 쳐지고.”

배신을 두 번이나 겪고도 어떻게 계속 사람을 만나시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답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그냥 혼자 하자 했는데, 그래도 타이밍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Part.7 당장 앞의 것만 보면

반대로 가장 속상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대표님은 양양 시절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두둥실이 잘되던 무렵, 동네 해변을 다 같이 바꿔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때만 해도 쓰레기와 캠핑 흔적만 남아 있던 곳이었습니다. 근처 다른 해수욕장들처럼 제대로 꾸며보자는 이야기였죠. 늘 바다 쪽으로 나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기회다 싶어 나서셨다고 합니다.

결과는 또 성공이었어요. 이국적으로 꾸민 해변은 첫해부터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리고 그만큼 신고가 쏟아졌어요. 울타리를 친 것도, 공연을 열고 돈을 받은 것도 문제가 됐습니다. 조사는 2년간 이어졌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신고한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장사하던 이웃들이었습니다.

끝내 이해하지 못한 건 그 셈법이었어요.

“우리가 안 된다고 자기 가게가 잘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자기 가게가 더 안 되는 거지. 당장 앞에 것만 보는 거예요.”

결국 해변은 접었습니다. 그 뒤로 양양의 그 해변이 어떻게 됐는지는, 지금 가보면 안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요즘도 비슷한 일로 마음고생을 하고 계세요.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 옮기지 않겠습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꺼내실 때 목소리가 오히려 또렷해지더라고요.

“나는 경험이 있잖아요. 내가 포기 안 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이길 수밖에 없거든.”

8년을 쌓아 올린 이름이, 이제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Part.8 방법은 찾으면 되니까

이런 분에게도 슬럼프가 있었습니다.

두둥실이 자리를 잡고 몇 해가 지나 양양의 시장이 가라앉던 시기였어요. 제주는 아직 붐비기 전이었고요.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같은 풍경이 다르게 보이더랍니다.

숙소로서의 묵다는 이미 충분했지만, 카페로서의 하와는 아직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여기에 제대로 집중해야겠다는 판단이 든 것도 그때였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야 김민영, 너 어떻게 할 건데. 정신 차려봐. 어떻게 할 건데.”

그러고는 메뉴를 만들고, 또 만들었습니다. 여기서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이것 역시 그냥 사라지고 말겠구나, 하는 걸 그때 아셨다고 해요.

대표님에게 슬럼프를 넘는 법은 마음을 다스리는 쪽이 아니라 손을 움직이는 쪽에 있었습니다.

“저는 일단 하면서 방법을 찾는 사람이에요. 그리고 목표를 좀 크게 잡아요.”

요즘 대표님을 가장 신나게 하는 건 준비 중인 사우나입니다. 이것도 순서가 거꾸로예요. 예산부터 따지지 않고 놓고 싶은 걸 먼저 정합니다. 그다음에 방법을 찾아요. 대출을 받을지, 협업을 제안할지, 쇼룸처럼 운영해볼지.

“할까 말까가 아니라,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방법은 찾아지는 거예요.”

다만 요즘은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하십니다. 나이도 있고, 아들도 자라고 있고, 무엇보다 이제는 탄탄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라고요.

그렇게 애를 쓰고도 지치는 날에는, 방법이 아주 소박해집니다. 일 끝내고 술 한 잔이요. 짜증이 났을 땐 매콤한 닭발, 기분이 좋을 땐 치킨. 다만 문을 닫는 게 밤 10시라 선택지는 늘 좁다고 하시더라고요.

Part.9 원동력 3단계

무엇이 이 모든 걸 밀고 가게 하느냐고 여쭤봤습니다. 답은 세 단계로 나뉘어 돌아왔어요.

“처음엔 먹고살려고 한 거고, 나중엔 책임감으로 한 거고, 일이 재미있어진 지금은 아들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어진 말에서, 인터뷰 내내 단단하던 목소리가 처음으로 조금 낮아졌습니다.

“일만 재미있게 하는 것보다, 이왕이면 결과를 남겨서 덜 미안해하고 싶은 것도 있는 거죠. 떳떳하고 싶은 거.”

아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 엄마가 늘 바빴던 시간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대표님이 원하시는 건 그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 기억에 붙일 문장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엄마가 이러느라 바빴어’라고 말할 만한 일들을 하고 싶은 거예요. ‘엄마 되게 고생했다, 엄마 대단하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이걸 할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쭉 얘기하다 보면 내 삶의 태도가 다 전해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나중에 한꺼번에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아주 사소한 일까지 지금부터 아들에게 전하십니다. 오늘은 루아를 했고, 오늘은 어떤 행사를 했고. 행사 때마다 영상통화로 현장을 보여주고, 단편 영화를 찍는 날엔 데려가 함께 영화를 보고요.

그러면 아이도 의견을 냅니다.

하와는 뭐가 문제인 것 같으냐고 물으면, 어른들을 위한 것밖에 없다고 답한다고 해요. 우리 또래가 와서 먹고 놀 게 있어야 한다고요. 언젠가 줄이 길게 늘어선 다른 가게를 부러워하며 “하와도 저렇게 줄 섰으면 좋겠다” 하셨더니, 아이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엄마, 그럼 가게를 저만하게 줄이면 되잖아.”

이 말을 전하시면서 웃으셨어요. 천재 아니냐면서요.

Part.10 묵다를 중심으로, 그리고 10년 뒤

앞으로의 그림을 여쭤봤을 때, 대표님은 흩어진 이름들을 하나로 모으는 이야기부터 꺼내셨습니다.

지금은 하와가 전면에 있지만, 앞으로는 숙소 ‘묵다’를 중심에 두겠다는 것이었어요. 숙소와 카페가 있고, 루아가 있고, 사우나가 들어오면 커뮤니티도 생기고, 가끔은 단편 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까지. 늘어난 것들을 이제는 하나로 묶어 내실을 다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제주 동서남북 어디든 묵다가 생기면, 서쪽 묵다에는 하와와 사우나가 있고 다른 데는 루아가 갈 수도 있고, 어떤 데는 단편 영화가 메인인 묵다가 생길 수도 있는 거죠.”

묵다가 기본이 되고 나머지는 프로그램처럼 얹히는 구조입니다. 그 구조가 완성되면, 어떤 콘텐츠를 가진 사람이든 자기 색을 얹을 수 있게 된다고 하셨어요.

“만약에 화장품 만드는 분들이 숙소를 한다면, 거기는 화장품 만드는 사람들이 하는 숙소인 거잖아요. 그럼 그게 콘텐츠가 되는 거죠. 다 똑같은 숙소가 아니라 다 아이덴티티가 있는 숙소여야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님이 옆에 두고 보는 건 올리브영이에요. 다만 진열만 하는 곳이 아니라, 이케아처럼 위층에서 먹어본 걸 아래층에서 사갈 수 있는 구조를 그리고 계십니다.

“외국 사람들이 제주에 왔을 때 작은 로컬 브랜드 제품을 사서 요리해 먹고, 아침에 그걸로 커피를 내려 먹고. 그런 게 좋은 거죠.”

소개에서 그치지 않고 그다음 매출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음료를 낼 때 스토리 카드를 함께 놓고 구매처 링크를 걸어두는 것도 오래전부터 하고 싶으셨던 일인데, 너무 바빠 아직 만들지 못했다고 해요.

그렇다면 10년 뒤에는 어디에 계실까요. 답은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한국에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이런 걸 좋아하잖아요, 제가.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주는 선입견이 있으니까. 그때쯤이면 내 주변에 재미있는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아들도 그때쯤이면 어른이 되어 있을 테니, 굳이 곁에서 오늘 뭐 하냐고 물을 필요도 없을 거라고요.

행선지는 자주 바뀝니다. 한동안은 스톡홀름이었어요. 만 원 남짓만 내면 사람들이 모여 함께 저녁을 먹는 커뮤니티가 있다는 글을 보셨거든요.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혼밥을 못 하는 분이라서요. 요즘은 여름에 함께 일했던 친구의 고향인 코타키나발루로 기울어 있습니다. 그 친구의 어머니 곁에서 요리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며 지내겠다는 계획이고요.

물론, 그곳에서도 가만히 계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서도 그러겠죠. ‘어머니, 우리 이거 에어비앤비 돌릴까요? 위치가 너무 좋네’ 하면서.”

Part.11 어떤 사람, 어떤 공간

마지막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여쭤봤습니다.

“열정적인 사람. ‘걔 참 일 재미있게 하더라, 용기 있더라, 해내더라.’ 엄청나게 대단한 걸 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내가 말한 것만큼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럼 공간은 어떻게 기억됐으면 좋겠냐고 이어 물었더니, 답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왔어요.

“저는 외국에 가도 뭘 봤는지보다, 그때 묵었던 숙소에 누가 있었는지가 훨씬 기억에 남아요. ‘거기 호스트 있었지’ 하는 거. 그게 중요한 걸 아니까 그러려고 엄청 노력해요.”

실제로 얼마 전 스위스에서 손님이 왔다고 합니다. 친구가 소개해줬다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얼굴이 기억나지 않으셨대요. 알고 보니 2년 전에 다녀간 손님이었습니다. 그분이 제주에 간다는 친구에게 이곳을 이야기해준 것이었죠.

“우리는 유행이 너무 빨라서 새로 생긴 곳만 찾아다니잖아요. 근데 외국 친구들은 아니거든요. 나도 발리 다녀온 지 5년 됐지만 누가 발리 간다고 하면 그때 좋았던 곳을 소개하잖아요. 그렇게 소문이 나면 5년, 10년, 15년이 지나도 묵다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에디터 윤찰나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부터, 대표님은 자꾸 무언가를 내어놓으셨습니다. 이건 드셔보셨냐고, 뭘 좋아하시냐고 물으면서요. 처음 만난 사람들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시나 싶었는데, 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겠더라고요. 손님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냥 이분이 사는 방식이었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대표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 내 인생을 쭉 돌아보고 있는 것 같다고요. 두 시간 동안 꺼내놓은 이야기의 절반은 무너지거나 빼앗긴 일들이었는데도, 그 목소리에는 억울함보다 앞으로 벌일 일들에 대한 ‘신남’이 더 묻어 있었습니다.

“할까 말까가 아니라,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방법은 찾아지는 거예요.”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문장 앞에서, 무언가를 시작하지 못했던 수많은 핑계들이 멋쩍어졌습니다. 우리는 늘 조건이 갖춰지길 기다리지만, 그녀는 먼저 마음을 먹고 기어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400평 밭 한가운데 수영장을 팠던 것처럼요.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며 주저앉고 싶은 날, 이 단단한 목소리가 한 번쯤 당신을 일으켜 세우기를 바랍니다. 일단 마음을 먹었다면, 어떻게든 방법은 찾아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