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윤찰나

25도. 술이 발효되기 가장 적당한 온도라고 합니다. 끓이면 효모가 죽고, 차게 두면 깨어나질 않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미지근하고 잔잔한 온도에서만 쌀은 조용히 술이 됩니다.

제주 서쪽 끝, 노을이 잘 드는 동네에 그 온도를 이름으로 삼은 양조장이 있습니다. 이시보(25). 숫자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이름입니다. 이곳의 에이스인 ‘이시보 막걸리’는 최근 2025 대한민국 주류대상 탁주 생막걸리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값진 결과를 얻어냈죠.

비결은 재료와 정성에 있습니다. 제주의 척박한 밭에서 자란 토종 밭벼인 ‘산듸쌀’을 절반 이상 깎아내어 빚은 프리미엄 순곡주거든요. 오직 쌀과 누룩, 물만으로 25도를 지키며 발효시켜, 청포도나 샤인머스캣 같은 새콤달콤한 향과 묵직하면서도 깔끔한 질감을 자랑합니다.

이시보를 이끄는 부경철 대표의 삶 또한 이 온도와 무척 닮아 있습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평온하고 적절한 온도로 삶을 다루려 노력하죠.

“너무 고점으로 즐거우면 항상 반대급부로 떨어지기 마련이거든요. 그러니까 웬만하면 평온함을 유지하려 해요.”

노래로 위로를 건네고 싶었던 청년이 양조장을 열고,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훌륭한 술을 빚기까지. 25도를 지키며 묵묵히 익어가는 그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Part.1 “영감을 주고 싶었어요”

기억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 그의 학창 시절로 가봅니다.

“학창 시절에 따돌림이라든가, 조금 어려운 시기가 있었어요. 그때 음악을 들으며 참 많이 치유를 받았죠.”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 같은 시기. 그는 음악으로 그 시간을 버텼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죠.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받은 위로를 돌려주기 위해 그는 실용음악을 전공했습니다. 어쿠스틱 기타를 매고 곡을 쓰고, 버스킹을 하고, 행사를 다녔죠. 스무 살 무렵의 그는 그렇게 노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현실의 벽과 마주했습니다.

“음악으로 돈 버는 게 참 힘들더라고요. 게다가 막상 무대에 서면 100을 준비해도 70, 80밖에 표출을 못 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온전히 즐기지를 못했던 거죠.”

영감을 전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노래’라는 방식이 자신과 완전히 맞닿아 있지는 않다는 걸 깨달은 그는 고향인 제주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술잔을 기울이며 길고 깊은 고민에 빠졌죠.

‘나는 남들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발상의 전환이 찾아왔습니다. 나도, 내 친구들도, 수많은 아티스트들도 모두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죠.

“내가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영감을 주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목표는 그대로 둔 채, 수단만 바꾼 방향 전환이었습니다.

Part.2 오래된 기억에서 찾아낸 명쾌한 해답

그 ‘무언가’를 고민하던 찰나, 그의 머릿속에 아주 오래된 풍경 하나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어린 시절 집 마당의 풍경이었습니다.

부 대표의 증조할머니는 오메기술을 담그고 고소리술을 내리던 분이셨습니다. 제주에서 오래 이어져 온 전통주들이죠.

“술 내리거나 거르는 날이 되면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이셨어요. 할아버지가 읍장을 하셔서 공무원분들이나 도지사분들도 왔다 가시고요.”

술이 익으면 사람이 모였습니다. 마당에 널따란 상이 펴지고, 갓 거른 술이 오가고,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마당을 채우던 날들. 마당 한구석에서 어른들을 지켜보던 아이의 눈에 그건 꽤나 익숙하고 평범한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십 년이 흘러 그 장면은 가장 강력한 해답이 되어 돌아왔죠.

생각해 보니 증조할머니는 이미 그가 원하던 일을 하고 계셨던 겁니다. 정성껏 술을 빚고, 그 술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건네는 일.

“‘아, 나는 술을 해야겠다’라고 마음먹게 됐죠.”

지금은 탁주만 만들고 있지만, 증조할머니의 레시피는 여전히 구전으로 가족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공장을 확장하고 약주와 증류주 설비가 갖춰지면, 그때부터 증조할머니의 레시피를 복원하는 작업도 조금씩 시작할 계획입니다.”

Part.3 이시보 막걸리의 시작

술을 만들기로 결심한 뒤, 그가 처음 떠올린 건 의외로 막걸리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했던 술은 위스키였거든요. 제주로 내려와 알바를 하며 조금씩 모은 돈으로 중저가 위스키를 맛보며 그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습니다.

“스코틀랜드, 대만의 카발란, 일본의 산토리… 유명한 위스키 산지는 다 섬이더라고요. 제주도 섬인데 왜 그런 게 없을까 싶었죠.”

제주만의 위스키를 만들겠다는 꿈을 안고, 그는 증류소와 와이너리가 발달한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려 했습니다. 2019년 비자까지 받아두었지만, 이듬해 터진 코로나19로 모든 계획이 멈춰 섰습니다. 준비한 시간도, 비자도 갈 곳을 잃었죠.

대신 그는 제주의 더큰내일센터에 들어가 창업 교육을 받으며 냉정한 현실을 직시합니다. 위스키 같은 증류주는 막대한 자본과 오랜 준비 시간이 필요한 ‘시설 사업’이었죠.

하지만 그는 주저앉는 대신 현실적인 돌파구를 찾아냅니다. 자신이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자본 안에서, 제주의 자연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아이템. 그것이 바로 막걸리였습니다.

그는 치열하게 매달렸습니다. 예비창업패키지를 받아 서울을 오가며 전통주를 배우고, 서귀포 주류면허센터 아카데미에서 기술을 익히며 마침내 이시보 양조장의 문을 열었습니다.

Part.4 24시간이 모자란 1인 양조장의 무게

현재 이시보 양조장의 일상은 쉴 틈 없이 돌아갑니다. 제조부터 브랜딩, 납품, 행정 서류, 지원 사업 챙기기까지 모든 것을 부 대표 혼자 감당하고 있죠.

“아침에 양조장으로 출근하고, 저녁엔 아이를 돌봐요. 그러다 바쁘면 아이를 재우고 새벽에 다시 나와서 일을 하죠.”

몸을 쓰는 양조 일과 머리를 쓰는 서류 일이 매일 뒤엉킵니다. 며칠씩 밤을 새우며 술을 빚고 나면, 머리가 멈춰 서류 작업을 할 수 없는 악순환도 겪습니다.

요즘 그가 부딪힌 가장 큰 벽은 무엇일까요. 그는 망설임 없이 “시간”이라고 답합니다. 24시간을 다 쥐어짜도 모자란 1인 양조장의 고단함. 긴장을 풀고 리프레시할 시간은 있냐는 질문에 그는 헛웃음을 지으며 답했습니다.

“리프레시요? 그냥 견뎌요. 참고 있습니다.”

사업 초창기엔 러닝과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렸지만, 요즘은 생각이 많아질 때면 조용히 일기를 쓰며 하루를 갈무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Part.5 기어코 마음이 사람에게 닿는 순간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그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아내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 가족 이야기를 꺼낼 때 그의 얼굴엔 가장 환한 웃음이 번졌습니다.

둘째는 역시 ‘술’ 그 자체입니다. 여전히 레시피를 개발하고, 그 결과물이 만족스러울 때 그는 깊은 행복을 느낍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는 화려한 수상 경력 대신 리뷰 한 줄을 꺼내놓았습니다.

“저희 막걸리를 마시고 전통주에 관심이 생겨서, 집에서 직접 술을 빚어보고 있다는 리뷰였어요. 그게 제일 좋더라고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던 학생. ‘나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고 다짐했던 그 작은 마음이 이십 년의 시간을 건너 누군가의 부엌에 기어코 닿은 겁니다.

“즐거운 사람은 더 즐거워지고, 슬픈 사람은 덜 슬퍼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정성 들여 만든 술이 위로가 되고 영감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Part.6 흙에서 잔으로, 잔에서 사람으로

10년 뒤의 이시보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는 현재 주류대상을 받고 많은 곳에 납품을 하는 지금조차 그저 ‘준비 단계’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미 새 공장 부지를 매입해 두었습니다. 그곳에서 증조할머니의 약주와 증류주 레시피를 부활시키는 것은 물론, 더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직접 농사를 짓고, 그 농산물이 술이 되고, 남은 부산물이 다시 환경으로 돌아가 순환하는 시스템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봄에는 보리가, 여름에는 쌀이 익어가는 밭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밭을 둘러보고 양조 시설을 견학한 뒤 시음과 판매로 이어지는 ‘팜 투 글라스(Farm to Glass)’. 나아가 그는 이 공간이 단순히 술을 소비하는 곳에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주의 지역 농가와 상생하며, 제주에 뿌리내린 사람들과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모여 서로의 이야기와 가치를 나누는 단단한 커뮤니티 거점을 꿈꾸고 있죠.

“술을 마시고 그 맛으로만 끝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해요. 오셨던 분들이 이 공간의 공기와 제주의 온도를 추억하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나누며 다시 이시보 막걸리를 떠올리게 하고 싶습니다.”

에디터 윤찰나

부경철 대표는 종종 강연에 나설 때마다 “삶의 코어(Core)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조언합니다.

음악에서 위스키로, 그리고 다시 제주의 쌀로 빚어낸 막걸리로. 그의 궤적은 겉보기에 계속 어긋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길을 잃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영감을 주겠다’는 단단한 코어가 있었기 때문이죠.

“기준선은 지키되, 계속 이 선 안에서 유연하게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흔들리지 않는 코어를 중심에 두고 삶을 주도적이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은 정확히 25도를 유지하며 묵묵히 발효의 시간을 견뎌내는 이시보 막걸리를 꼭 닮아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속도에 치여 나를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떨까요. 끓어넘치지 않아도, 차갑게 식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삶은 지금 몇도 인가요?

이시보 막걸리 한 잔을 곁에 두고,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고요한 저녁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