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이창현

이국적인 사진 명소로만 알려진 이호테우의 목마등대. 그 색을 따라가 보면, 뜻밖에도 뱃사람들의 오래된 약속이 나온다.

제주공항에 내려앉기 직전, 비행기 창밖으로 바다 위에 선 두 마리의 말이 스친다. 하나는 하얗고, 하나는 빨갛다.

이호테우 해변의 목마등대. 사람들은 이걸 배경으로 노을 사진을 찍고, “이국적이다”, “트로이의 목마 같다”고 말하며 제주 여행을 마무리한다. 인생샷 명소, 마지막 코스. 대개 그런 얼굴로 먼저 다가온다.

그런데 매일 그 앞을 지나면서도 잘 묻지 않는 질문이 있다. 등대는 원래 하얀 기둥 하나면 충분한데, 왜 하필 말일까. 그리고 왜 두 마리는 서로 다른 색일까.

Part.1 바다 위의 말

두 등대는 2008년 11월에 세워졌다. 이호 앞바다를 매립해 마리나항을 만들던 사업자가, 어디서나 똑같이 생긴 기둥형 등대를 그대로 쓰지 않기로 했다. 높이 12미터, 조랑말을 형상화한 쌍둥이 등대는 그렇게 태어났다.

이유는 단순했다. “말의 고장” 제주의 지역성을 등대에 담고 싶다는 것.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옛말처럼, 제주에게 말은 오래된 상징이다. 육지의 등대가 흉내 낼 수 없는 제주만의 인사인 셈이다.

Part.2 색은 예뻐서 고른 게 아니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진짜 이야기는 색에 있다.

하얀 말과 빨간 말의 색은 감각적으로 고른 게 아니다. 전 세계 항구가 지키는 항로표지 규칙을 따른 것이다. 배가 바다에서 항구로 들어올 때를 기준으로, 오른쪽에는 빨간 등대, 왼쪽에는 하얀 등대를 둔다. 그리고 배는 그 두 마리 말 사이로 지나가야 한다.

색이 곧 방향의 언어다. 두 마리 말은 나란히 서서 “이 사이로 들어오라”고 길을 그어주고 있는 것이다.

Part.3 밤이 되면

문제는 밤이다. 색이 보이지 않으면 규칙도 소용이 없다.

그래서 빨간 말에는 빨간 불빛이, 하얀 말에는 초록 불빛이 들어온다. 날이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켜진다. 어둠 속에서도 뱃사람이 어느 쪽이 오른쪽이고 어느 쪽이 왼쪽인지 알아보도록. 낮의 색과 밤의 빛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Part.4 누군가에겐 풍경, 누군가에겐 길

관광객에게 두 마리 말은 노을 배경이다. 하지만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에게 두 마리 말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표식이다.

같은 자리에 선 같은 등대가, 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읽힌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색의 예쁨을 보고, 배를 모는 사람은 색의 뜻을 본다. 이국적으로만 보이던 풍경이, 알고 보면 지극히 실용적인 약속 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Part.5 남은 것들

덧붙일 이야기가 하나 있다. 이 등대를 세운 유원지 사업은 결국 승인이 취소됐다. 화려한 계획은 흩어지고, 지금은 두 마리 말과 몇몇 구조물만 바다 앞에 남았다.

목적을 잃은 자리에,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다시 찾아온다. 노을을 보러, 사진을 찍으러, 그저 바다를 보러. 남은 것이 새로운 뜻을 얻은 셈이다.

Part.6 다시 보기

제주의 많은 것이 그렇다. 신기해 보이는 것 뒤에는 대개, 살아가기 위한 이유가 있다.

다음에 이호테우에서 노을을 기다린다면, 사진을 찍기 전에 한 번쯤 색을 들여다봐도 좋겠다. 저 하얀 말과 빨간 말은 지금 누구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있을까.

당신에게도, 매일 지나치면서 아직 뜻을 물어보지 않은 풍경이 있는지 물어본다.

참고 자료

「제주 이호테우해수욕장 조랑말 등대와 ‘피사의 사탑’」, 연합뉴스(2023) 비짓제주, 「이호테우 빨강말등대」 소개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