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귤 한 박스에서 시작된 질문

나는 감귤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생일이 되면 지인들이 감귤을 많이 보내준다. 고마운 일이지만,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아서 남는 귤은 착즙기에 넣어 주스로 만든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착즙기를 돌리고 나면 껍질과 찌꺼기가 엄청나게 나온다. 주스 한 잔을 만들 때마다 그보다 더 많은 부피의 잔해가 쌓인다. 처음에는 그냥 버렸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이 많은 찌꺼기는 다 어디로 가는 걸까?

5만 톤이라는 숫자

찾아보니 규모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제주에서만 매년 약 5만 톤의 감귤 껍질과 부산물이 폐기된다. 톤당 처리 비용은 수만 원. 농가 입장에서는 감귤을 수확해서 파는 것까지가 일이 아니라, 남은 것을 치우는 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든다는 뜻이다.

쓰레기가 되는 순간 비용이 되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생산자가 떠안는다. 감귤이 맛있을수록, 많이 팔릴수록, 역설적으로 폐기물도 늘어나는 구조다.

아버지의 귤피차

그런데 내 아버지는 한의학을 공부하신 분이다. 아버지는 귤을 먹고 나면 껍질을 그냥 버리는 법이 없었다. 깨끗이 씻어 말려두었다가 차로 우려 마셨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진피(陳皮)‘다. 오래 묵힐수록 약효가 좋아진다고 했다.

어릴 때는 왜 껍질을 모아두나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이미 그 가치를 알고 계셨던 셈이다.

껍질 안에 숨어 있는 것들

실제로 감귤 껍질과 부산물에는 강력한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다. 플라보노이드, 리모넨, 펙틴 같은 물질이 풍부하다. 버려지는 것 속에 오히려 열매보다 더 농축된 기능성 성분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5만 톤의 폐기물이 아니라, 5만 톤의 원료가 매년 제주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던 거다.

버리면 비용, 바꾸면 가치. 같은 것을 다르게 보는 순간, 문제가 가능성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