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0 고백

저 하나 고백할게요.

제주에서 일하면서, 감귤이 당연히 제주 토종인 줄 알았습니다. 돌담 위에 주렁주렁 달린 귤. 할머니들이 밭에서 따시는 귤. 공항 나가면서 손에 들고 가는 귤. 이건 뭐, 태초부터 여기 있었던 거 아닌가 싶었죠.

찾아봤더니요. 아닙니다.


Part.1 감귤의 고향은 인도입니다.

네. 인도 동부.

거기서 태어나서 기원전 4000년쯤 중국 갔다가, 중국에서 수천 년간 이런저런 품종으로 갈라졌다가, 일본 건너가서 개량돼서, 1911년에야 제주에 왔습니다.

고작 115년 전이에요. 제주 돌담이 수백 년인데, 감귤은 돌담보다 한참 어립니다.


Part.2 그 전에는 뭐가 있었냐면요.

재래종 감귤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진귤, 동정귤, 당유자, 청귤, 병귤. 이름부터 낯설죠.

지금 우리가 아는 달달한 귤이랑은 완전 다른 물건이에요. 씨가 10개 넘게 들어 있고, 시고, 작고, 껍질이 두꺼웠습니다. 먹는 과일이 아니라 약재에 가까웠어요. 한의학에서 말하는 ‘진피’ 그 귤 껍질 말린 거가 바로 이 재래종 귤에서 나온 겁니다. 조선시대에는 22종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12종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귤들은 조선시대 내내 매년 임금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감귤이 한양에 도착하면 성균관 유생들에게 나눠주고 특별 과거시험까지 열었어요. 황감제라고. 300년이나 계속된 국가적 이벤트였습니다.

한양에서는 경사였죠. 근데 제주에서는요? 정반대였습니다.

할당량은 매년 늘고, 못 채우면 문책 받고, 기근이 들어도 감귤 진상은 면제가 안 됐어요. 결국 농민들이 귤나무 뿌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일부러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나무가 살아 있으면 의무가 따라오니까.

감귤나무를 ‘고통나무’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Part.3 1911년, 묘목 15그루.

진상제도가 폐지되고 재래종 감귤밭이 거의 사라진 뒤, 1911년에 한 프랑스 신부님이 등장합니다. 엄택기(Emile J. Taque). 서귀포 서홍동 성당에서 근무하던 이 분이, 제주 자생 왕벚나무를 일본에 보내주고, 그 답례로 온주밀감 묘목 15그루를 받아서 심은 겁니다.

벚꽃과 감귤을 맞바꾼 거예요.


Part.4 그런데 이 ‘온주밀감’이라는 게요.

여기서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게 있습니다.

지금 제주에서 가을부터 겨울까지 수확하는 노지감귤 있잖아요. 우리가 겨울마다 장판 틀고 까먹는 그 작은 귤. 그게 다 온주밀감의 한 종류예요. 참고로 노지감귤은 노지에서 키운다고 해서 노지 감귤입니다.

제주 노지감귤의 거의 전부가 온주밀감이고, 그중에서도 조생 온주밀감이 90%를 차지합니다. 극조생이 먼저 나오고, 조생이 그 뒤를 따르고. 10월부터 12월까지 우리가 먹는 귤은 사실상 전부 이 하나의 품종에서 나온 겁니다.

온주’라는 이름은 중국 저장성 원저우(溫州)라는 도시 이름에서 따왔고, 그 원저우의 귤이 일본 규슈로 건너가면서 일본 건너가서 씨 없는 돌연변이가 생겨난 겁니다. 원래 감귤은 씨가 있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 온주밀감은 돌연변이로 씨가 사라진 희귀한 케이스예요.

정리하면요.

중국 원저우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씨가 사라지고, 1911년에 제주에 온 놈. 그게 지금 우리가 ‘제주 감귤’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입니다. 재배 면적 약 14,000ha, 연간 생산량 37만 톤. 이 거대한 산업이 115년 전 묘목 15그루에서 시작됐다는 게 좀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Part.5 그리고 어느 순간 ‘대학나무’가 됩니다.

1960년대. 정부에서 제주 감귤 재배를 밀어줍니다. 귤이 돈이 됐거든요. 귤나무 한 두 그루의 수입으로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감귤나무를 ‘대학나무’라 불렀습니다.

1964년에 413ha이던 감귤밭이, 10년 만에 11,200ha가 됩니다. 27배. 1970년에는 한 해에만 282만 그루가 심어졌어요. 제주 전체 농가의 91%가 감귤을 재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같은 나무예요. 고통나무였던 게 대학나무가 된 거예요. 이름이 바뀐 게 아니라, 시대가 바뀐 겁니다.


Part.6 그 뒤로 뻗어 나간 가지들.

온주밀감이 제주를 장악한 뒤, 사람들한테 욕심이 생긴 거예요.

“까기 쉬운 건 좋은데, 향이 너무 없잖아.”

“오렌지는 향이 좋은데, 칼 없이 못 까먹잖아.”

이 두 불만을 동시에 해결하려고, 1949년 일본에서 온주밀감과 오렌지를 교배합니다. 결과물이 청견이에요. 밀감의 편리함과 오렌지의 향을 합치려 한 첫 시도. 이게 이후 모든 만감류의 시조가 됩니다.

대표적인 게 한라봉이에요. 청견에다 향이 진한 인도산 만다린(병감)을 교배한 거예요. 1972년 일본에서 만들어져서 1990년대에 제주에 들어왔어요. 꼭지가 볼록 튀어나와서 한라산 닮았다고 한라봉.

천혜향은 한 술 더 뜬 경우예요. 청견에 미국산 만다린(앙콜)을 교배하고, 거기에 또 플로리다산 만다린(머콧)을 한 번 더 섞었어요. “향을 극한까지” 라는 집념의 결과물. 이름 뜻 자체가 ‘하늘이 내린 향’이에요.

레드향은 한라봉에 밀감 계열 품종을 다시 교배한 거예요. “한라봉 당도는 유지하면서 밀감처럼 쉽게 까고 싶다”는 욕망의 결과. 껍질이 붉어서 레드향.

나머지 만감류도 원리는 같아요. 청견이라는 하나의 출발점에서, “더 달게”, “더 향기롭게”, “더 까기 쉽게” 이 세 방향으로 계속 가지를 뻗어온 거예요.

결국 온주밀감이라는 하나의 외래 품종이 제주에 뿌리를 내리고, 거기서 파생된 교배 품종들이 제주 겨울 과일 지도 전체를 만들어낸 겁니다. 하나의 나무에서 숲이 된 셈이죠.

제주 감귤 품종들 출처: 조선일보


마무리.

감귤은 제주 토종이 아닙니다.

우리가 매년 겨울 까먹는 그 귤은 전부 ‘온주밀감’이라는 하나의 품종이고,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씨가 사라지고, 겨우 115년 전에 제주에 도착한 이방인입니다.

근데 지금, 감귤 없는 제주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쩌면 ‘토종’이란 태어난 곳이 정하는 게 아니라, 뿌리를 내린 시간이 정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참고 자료

  1. 농촌진흥청 RDA 인터러뱅 42호 «대학나무, 감귤이야기» (2011)
  2.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 «감귤의 역사와 분류»
  3. 제주감귤연합회 jejugamgyul.or.kr
  4. 한국학중앙연구원 «제주 향토문화전자대전»